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(문단 편집) === 동유럽/발칸반도 국가들 === [[독소전쟁]] 시기에 유태인 만이 아니라 수많은 슬라브계 혹은 유대계, 집시계열 소련인들은 게르만족의 생활권([[레벤스라움]]) 확보라는 명목으로 학살당했다. 또한 소련은 애초부터 [[베어마흐트]]에 비해 질적으로 열악했었던 것에 더하여 [[대숙청]] 등으로 군 지휘체계까지 막장이였던 상황이라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. 오늘날 연구자들은 대조국전쟁 당시의 소련 측 '''사망자'''를 '''2900만 명'''(당시 소련 인구가 2억이었다)으로 잡고 있는데, 이 중 900만 명이 군인, 2000만 명이 민간인들이었다. 이는 2차 세계 대전 전체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나 되는 숫자다. 그러나 소련군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일군을 쳐부수며 전쟁에서 승리했지만[*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전사자의 '''80%'''가 동부 전선에서 발생했다.], 이미 모스크바에서 베를린 사이에 남아 있던 것은 오직 잿더미뿐이었으며 나치의 학살과 침공으로 생겨난 인구적 타격은 비율로나 절대수로나 가장 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. 러시아에서는 나치와의 전쟁을 [[독소전쟁|대조국전쟁]]이라 부르며 승전한 날을 가장 큰 행사로 치룬다. 그런데 소련 붕괴 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러시아 등지에서는 '[[패드립|히틀러 만세]]'를 외치며 외국인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네오 나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. 자기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들은 조국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웠는데 그야말로 누워서 침뱉기 하는 꼴. [[벨라루스]]의 경우 아직까지도 사람 뼈로 이루어진 지층이 존재한다고 이야기될 정도이며, [[우크라이나]]에서도 [[키예프 전투(1941년)|키예프 전투]]를 겪은 소련 서부 지역의 도시들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. 단 이 지역들이나 러시아 서부 지역은 소련 체체에 대한 반감이 강하여 처음에는 나치를 해방자로 인식하고 [[벨라루스 중앙 라다|괴뢰국]] 설립에 일조하거나 소수민족 학살을 방조, 참여하기도 했었다. 반공 정권이나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한 명분으로 나치는 이들을 이용하다가 나중에 세력이 커지자 괴뢰국을 [[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]]로 넣고 민족주의자와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를 자행하였기에 현재 일부 네오나치 세력을 제외하면 반공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도 나치 독일군 점령 시절을 좋게 보는 경우가 드물거나 최소 중립적으로 본다. [[폴란드]]와 [[체코]], [[그리스]]에서는 나치에 대한 평가는 더욱 안 좋은데 [[체코]]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[[뮌헨 협정]]으로 [[주데텐란트]]를 뜯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나치 독일에게 합병당하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에는 강제적으로 체코인들이 나치군에 입대당해 싸우다 못해,[* [[라이언 일병 구하기]]에서 체코 강제 징집병들이 총 버리고 살려달라며 [[체코어]]로 우린 체코인이라고 항변하며 당신들을 쏘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미군들은 체코어나 독일어나 구별 못해 그냥 다 쏴죽여버리고 뭐라는 거야? 라고 하던 장교에게 "그게? 배고프다고 밥먹겠다며 손들지 뭡니까? 하하하하하." 하고 웃는다. 체코인들에게는 굉장히 씁쓸한 장면일 것이다.] 모국을 강점한 나치군에게 저항하다가 1942년 나치군대가 저지른 리디체(Lidice) 마을 학살 사건과 레자키(Lezaky) 마을 학살 사건에서 수많은 체코 국민들이 당시 나치군이 쏘아댄 총탄 및 포탄 세례에 일방적으로 살육당한 어두운 역사를 겪었다.[* [[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|체코 주둔 나치 독일군 장교]]를 체코의 반나치 레지스탕스 인사가 암살했다는 이유로 레지스탕스 세력들의 거점지들을 토벌한다는 명분 하에 애꿏은 민간인 마을을 초토화하고, 무고한 민간인들을 겨냥한 양민학살을 자행했다.] [[그리스]]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, 이탈리아 왕국 등 추축국에게 국토가 점령당한 적도 있으며, 나치독일이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70여년이 지난 2011년 [[유로존 재정위기]] 당시 그리스에게 긴축정책을 권유하던 독일 [[앙겔라 메르켈]] 총리과 독일의 정치 각료들을 현지 언론에서 나치 제복을 입은 나치독일군으로 묘사하는 [[만평]]을 올리거나 혹은 나치 독일군 장교와 합성한 포스터를 길거리에 대놓고 올리는 등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22&aid=0002325507|#]] 메르켈 등 독일 정치인을 나치로 비하하기도 했다. 폴란드의 경우 1939년, 그러니까 전쟁 직전 폴란드의 인구는 3500만 명이었다. '''이 중 1/6인 600만 명'''이 1945년까지 나치가 폴란드를 통치하는 동안 [[저세상]]으로 가고 말았다. 참고로 2차 대전 참전국 중 인구 대비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폴란드였다. 희생자 600만 명 중 290만 명은 유대인, 277만 명은 폴란드인[* 폴란드 국립 기념원(Instytut Pamięci Narodowej, 약자 IPN), [[https://web.archive.org/web/20120323161233/http://niniwa2.cba.pl/polska_1939_1945.htm]]]이었다.[* 폴란드는 다민족 국가로, 1931년 통계에 의하면 폴란드 전체 인구 중 폴란드인 68.9%, 우크라이나인 13.9%, 유대인 10%, 벨라루스인 3.1%, 독일인 2.3%, 기타 2.8%로 구성되어 있었다.] 또한 법률가의 절반 이상, 의사 40%, 대학교수, 가톨릭 성직자 1/3 이상이 학살당했다.[* 폴란드 엘리트층의 희생이 막심했던 이유는 나치가 폴란드 엘리트층을 모두 제거하여 폴란드 민족을 노예화하려 했기 때문이다. 또한 이 엘리트의 상당수가 유대계였으니 독일에게는 그야말로 '''비오는 날 대청소'''였던 셈.] 물적 피해도 심각하여 전체 국가 재산의 40%를 손실했으며, [[바르샤바]], [[우치(폴란드)|우치]], [[그니에즈노]], [[그디니아]], [[포즈난]], [[라돔]], [[키엘체]], 타르누프, [[자모시치]], [[토룬]] 등 주요 도시들이 폐허가 되었다. 게다가 전후에도 과거 완전한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소련의 위성국으로 휘둘려야 했던 역사가 있기에 '''폴란드인들에게 나치는 엄청난 역사적 시련을 던져준, 악마 그 자체다.''' [[루마니아]], [[헝가리]], [[불가리아]] 등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함께 [[추축국]]의 편에 섰던 다른 동유럽 나라들에서도 나치에 대한 인식은 안 좋긴 마찬가지이다. 이 쪽도 나치의 반강제적인 추축국 합류로 인해서 전후에도 소련에 의해 강제적으로 공산화되어 소련의 위성국으로 휘둘리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. 다만 반강제적으로 히틀러에 의해 추축국에 참전해야 했던 불가리아와 다르게[*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히틀러가 압력을 넣어준 덕에 [[발칸 전쟁]] 당시 루마니아에게 빼앗긴 남도브루자 등 흑해 연안의 영토들을 루마니아로부터 수복했으나, 아예 홀로코스트에 참여하라는 나치독일의 유대인 호송 압력에도 자국 내 유태인 국민들을 아우슈비츠와 다하우 등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인도하지 않고 적극 보호했으며, 독소전과 서부전선에 대한 독일의 불가리아군 참전 요청도 거부한 바 있었다. 그리고 당시 불가리아 민중들 또한 독일을 썩 좋아하진 않았고,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 중에도 불가리아 조국전선 등 나치독일군에 대항하는 반독 게릴라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불가리아 국내의 나치 독일군과 군사고문단, 외교관들을 공격하거나 죽이기도 했었다. 그리고 나치가 패망하고 불가리아가 공산화된 직후에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했던 [[게오르기 디미트로프]]와 [[토도르 지프코프]]도 제2차 대전 당시 반나치 게릴라 세력들을 지휘하며 나치 독일군대와 싸우던 인물이었다.]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나치의 압력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도 전쟁에 참전하고 나치와는 별도로 [[헝가리군]]과 [[루마니아군]]도 독소전 등지에서 [[전쟁범죄]]도 상당히 자행했기에 애매하다.[* 당장에 추축국 아이디어를 짠 나라가 [[헝가리 왕국|어디]]인지를 생각해보자.] 심지어 이들 3개국은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추축국의 일원이었음에도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 아닌 나치에 의한 피해국이라고 외치며 독일의 [[유엔]] [[상임이사국]] 진출을 결사반대하고 있다. 물론 [[나치즘]]과 [[반유대주의]]를 추종하는 현지의 극우파들과 극우 정당도 있지만 이들 3국의 국민들 대부분은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. 실제로 불가리아 등 발칸반도 국가로 여행 갔던 한 영국인 관광객은 불가리아의 [[흑해]] 휴양지에 불가리아 현지인에게 니네 나라 아돌프 히틀러 나치놈들이랑 손잡고 깡패짓했잖아.라고 말을 함부로 했다가 그 곳의 현지인 남성에게 멱살 잡혀 '우리나라 역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깡패라고 입 나불대지 마라', '[[제국주의]] 시대 [[아프리카]], [[인도]] 등 식민지 사람들 학살하고 잔혹하게 착취한 주제에 니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강압에 끌려간 우리나라를 비난할 자격이 되느냐?',[* 사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등 추축국의 주요국가들의 악행이 커서 그렇지. 영국이나 프랑스, 네덜란드 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으로 추축국과 맞서 싸우던 다른 서유럽 열강들도 식민지였던 여타 나라들에서는 잔인하고 억압적으로 통치한 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. 이게 악용되어서 추축국 범죄나 연합국 범죄나 다를거 없다는 물타기로 이용되는 게 문제지...] '앞으로 그 살인자 이야기 꺼내지마라. 우리도 그 놈한테 반강제적으로 끌려갔던 아픈 역사 있다!'라며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. 다만 [[발트 3국]] 등지에서는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이들도 많았고 이들은 지금까지 친 나치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 주변국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. 또한 발트 3국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의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몇 안되는 유럽의 지역이다. 당시 발트 3국은 소련에게 강제로 합병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게 동조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다를 수는 있지만, 나치가 오기도 전에 앞장서서 미리 유태인들을 몰아놓고 개패듯 잔혹하게 살해했던 역사까지도 [[독립운동]]으로 포장하려는 일각의 주장은 도를 넘은 듯하다. 심지어 [[라트비아]]에서는 [[슈츠슈타펠]] 자원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. 그 외에도 소련이 탄압하던 몇몇 소수민족 역시 나치를 자신을 해방하려는 자들로 보고 우호적으로 본 사례도 있다. [[크로아티아]][* 현대 크로아티아와 달리 2차대전 당시의 크로아티아는 [[추축국]]에서 세워준 일종의 [[괴뢰국]]이었다. 영토 자체도 실제로는 냉전시기 유고연방보다는 조금 작은 정도였다. 당시 크로아티아인들은 대부분 나치, [[우스타샤]]에 우호적이였다. 그러니 강제부역이라 하기도 뭐하다...]와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]] 같은 경우 나치당에 부역한 정교유착의 결과물인 [[민병대]]로 [[우스타샤]]와 현지 친나치 부역자들로 구성된 나치독일군의 [[외인부대]]인 [[한트샤르]] 여단이 있었는데, 이들은 나치당에게 적극적으로 부역하면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영내에서 살던 세르비아계와 유대계, 집시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였다.[* 현지 주둔 독일국방군은 경악하여 이들과 협력을 무산시키자는 통보를 보내기도 하였으나 정작 SS 등은 감탄했다고 한다.] 게다가 현재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극우주의자들 사이에서 [[우스타샤]]와 [[한트샤르]]를 애국자로 추앙하거나 이들을 지원한 나치를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. 다만 이 지역 역시 나치에 부역했던 것과는 별개로 추축국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인데다 마냥 나치의 지배에 따른 것도 아니어서 그런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등에 가담하여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사람들도 있었으며[* 당장에 유고 연방의 초대 대통령이자 2차 대전 당시 유고 파르티잔의 지도자였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도 크로아티아 출신이다.] 일부 개념을 가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현지인들은 우스타샤와 한트샤르를 흑역사로 생각하거나 나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.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우스타샤와 보스니아 한트샤르, 나치 독일군에게 학살당했던 [[세르비아]]에서는 나치에 대한 인식이 나쁜 편. 그러나 정작 이 쪽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계로 이루어진 유고 내 저항 조직인 [[체트니치]]가 나치에 대항하는 창설 초기의 이념은 갖다 버리고 나치 독일 등 추축국에 빌붙어서 전쟁범죄를 벌이기도 하고,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벌어진 [[유고슬라비아 내전]]에서 나치 독일이나 크로아티아를 욕하지 못할 정도로 보스니아계 주민들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상대로 [[제노사이드]] 수준의 대량학살과 보복을 저질렀으니 어찌보면 [[가해자가 된 피해자]]라고 볼 수 있겠다. 여하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실질적 승계국이자 옛 유고의 맹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세르비아의 입장에서 나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피 흘려 발칸의 남슬라브족을 통합하여 결성한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짓밟다 못해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한트샤르의 세르비아계에 대한 학살을 지원하여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, 보슈냐크계 등 각 남슬라브계 민족 간 종교적 갈등과 원한, 분열을 극대화시키고 2차 대전 전후 티토가 다시 통합시켜놓았던 [[유고슬라비아]]를 다시금 분열과 학살, 몰락으로 몰아가게 만든 악의 원흉으로 여기고 있다.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, 세르비아를 제외한 다른 구유고권 국가들인 [[몬테네그로]]와 [[북마케도니아]], [[슬로베니아]]의 경우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등 추축국에게 점령당한 역사 때문인지 나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. [[알바니아]]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때 추축국과 싸운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나치에 대한 반감이 있다. 아예 알바니아 공산정권의 초대 수반인 [[엔베르 호자]] 전 서기장이 [[빨치산]] 활동을 하며 독일군과 이탈리아군과도 싸웠을 정도. 다만 현재의 알바니아는 [[목구멍이 포도청]]일 정도로 동유럽에서 굉장히 가난한 나라인지라 나치 시절 독일에 대한 반감이 있어도 폴란드나 체코처럼 독일에 대한 과거사 사죄 요구를 드러내지 못 하고 있다.[* 폴란드와 체코는 알바니아보다는 그래도 1인당 [[GDP]]가 높은 편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